인디언 모터사이클의 시작 - 할리보다 먼저였던 미국 1위(1901~1930년대)

"미국 모터사이클"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사람들은 할리데이비슨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런데 미국 모터사이클의 진짜 원조는 따로 있어요. 인디언 모터사이클(Indian Motorcycle). 할리데이비슨보다 2년 앞선 1901년에 첫 모터사이클을 만들었고, 1910~1920년대에는 미국 시장 1위를 넘어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큰 모터사이클 회사였습니다.
지금은 거리에서 잘 보이지 않지만, 그 자리는 한때 인디언의 것이었어요. 오늘은 그 인디언이 어떻게 시작됐고, 어떻게 미국 모터사이클의 상징이 됐는지부터 정리해 보겠습니다. 인디언 모터사이클의 100년 서사를 다루는 시리즈의 첫 번째 글입니다.

1901년, 미국 모터사이클이 시작된 해
이야기는 두 자전거 레이서로부터 시작됩니다. 조지 헨디(George M. Hendee)와 오스카 헤드스트롬(Oscar Hedstrom). 헨디는 매사추세츠 스프링필드에서 1897년에 자전거 회사 헨디 매뉴팩처링(Hendee Manufacturing Company)을 차린 사업가였고, 헤드스트롬은 스웨덴 출신 엔지니어로 자전거 레이스 페이스 차량용 가솔린 엔진을 직접 깎아 만들던 인물이었어요.
1901년 초,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가솔린 모터사이클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헤드스트롬이 코네티컷 미들타운의 작은 작업장에서 프로토타입을 손으로 깎았고, 1901년 5월 그 첫 차를 들고 스프링필드로 옮겨와 사람들 앞에서 시연했어요. 가파른 자갈길 언덕을 거뜬히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수백 명의 군중이 환호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게 미국 모터사이클 산업의 진짜 출발점이에요.
같은 시기 윌리엄 할리와 데이비슨 형제는 막 모터사이클을 만지작거리는 단계였습니다. 할리데이비슨이 정식으로 모터사이클을 판매하기 시작한 건 1903년. 인디언이 2년 앞섰어요.
작은 트리비아 하나. 회사가 1923년에 이름을 바꿨을 때 정식 명칭이 "Indian Motocycle Company"였습니다. 'motorcycle'이 아니라 r이 빠진 'motocycle'. 당시엔 그 표기를 썼던 거예요. 우리가 지금 부르는 "인디언 모터사이클"이라는 이름은 사실 후대의 표기예요.

레이싱이 만든 신화 — 1911년, 영국 자존심을 깬 사건
인디언이 단순한 한 회사가 아니라 신화가 된 결정적 계기는 레이싱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1911년 영국 맨섬 TT(Isle of Man Tourist Trophy)는 모터사이클 역사책에 따로 한 챕터로 남는 사건이에요.
맨섬 TT는 영국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모터사이클 레이스. 1911년부터 그 유명한 산악 코스(Mountain Course)에서 열리기 시작했는데, 이 첫 산악 코스 시니어 레이스에서 미국에서 건너간 인디언 팀이 1위, 2위, 3위를 모조리 쓸어버렸습니다. 올리버 고드프리가 1위, 찰스 프랭클린이 2위, 아서 무어하우스가 3위. 영국 외 국가 모터사이클이 맨섬 TT에서 우승한 첫 사례였고, 그것도 단순한 우승이 아니라 시상대를 전부 점령한 거예요.
영국 라이더와 관중에겐 굴욕적인 결과였지만, 인디언에겐 세계가 자기네 이름을 외우게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이 해는 모터사이클 역사에서 "인디언 서머(Indian Summer)"라고도 불려요. 참고로 이 레이스에서 2위를 한 찰스 프랭클린은 나중에 미국 스프링필드로 건너가 인디언의 명차 스카웃을 설계하게 됩니다.

시장 1위 시대 — 1910년대 인디언의 황금기
레이싱 성과는 곧바로 판매로 이어졌습니다. 1911년 인디언의 모회사인 헨디 매뉴팩처링은 세계에서 가장 큰 모터사이클 공장이었어요. 미국 내수는 물론이고 영국, 유럽, 호주까지 수출했고, 1차 세계대전 때는 미군에 가장 많은 모터사이클을 공급한 회사 중 하나였고, 1920년대에는 생산량의 절반을 해외로 수출할 정도로 국제적인 브랜드였습니다.
이 시기 인디언의 위상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할리데이비슨이 인디언을 따라잡으려고 안간힘 쓰던 시기." 지금 우리가 아는 두 회사의 위상이 정확히 반대였던 거예요.

명차들의 탄생 — 스카웃과 치프
이 영광의 시기에 인디언은 두 가지 결정적인 모델을 내놓습니다. 둘 다 설계자는 1911 맨섬 TT 2위였던 찰스 B. 프랭클린(Charles B. Franklin)이에요.
1920년 인디언 스카웃(Indian Scout). 37큐빅인치, 약 600cc급 V트윈을 얹은 모델로, 엔진과 변속기를 하나로 결합한 깔끔한 설계가 특징이었어요. 다루기 쉽고 빠르며 신뢰성이 좋아 라이더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특히 1928년에 나온 101 스카웃은 지금도 "인디언이 만든 최고의 모터사이클"이라고 평가받아요.
1922년 인디언 치프(Indian Chief). 61큐빅인치(약 1000cc) V트윈의 대형 투어러로, 인디언의 플래그십이 되는 모델이에요. 이후 74큐빅인치(약 1200cc)로 키워 "빅 치프(Big Chief)"가 됐고, 인디언 하면 떠오르는 그 클래식한 깊은 펜더 디자인(1940년 도입)이 더해지면서 미국 크루저의 원형이 됐습니다.
스카웃과 치프, 이 두 이름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있어요. 현행 인디언 라인업의 핵심이 여전히 스카웃과 치프입니다. 디자인의 힘이 그만큼 강했던 거예요.

인디언 4 — 직렬 4기통이라는 미친 발상
여기에 인디언이 한 가지 더 보탰습니다. 다른 회사라면 시도조차 안 했을 무모한 도전이었어요.
1927년, 인디언은 직렬 4기통 모터사이클을 만들던 에이스 모터(Ace Motor Corporation)를 인수했습니다. 그리고 이 4기통 엔진을 자기네 차체에 얹어 처음엔 "인디언 에이스(Indian Ace)"로, 1928년부터는 정식으로 "인디언 4(Indian Four)"라는 이름으로 1942년까지 생산했어요.
V트윈이 대세이던 미국 시장에서 4기통 모터사이클을 양산한 메이커는 손에 꼽혔는데, 그 흐름을 1942년까지 끌고 간 게 인디언이었습니다. 부드럽고 조용하고 강력한 이 4기통은 "모터사이클계의 듀센버그(Duesenberg of motorcycles)"라 불리며 럭셔리 라인업의 정점이 됐어요. 인디언이 단순히 1위 회사가 아니라 가장 야심 찬 회사였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정리하며
1901년 두 자전거 레이서가 작은 작업장에서 시작한 회사가, 30년이 지나자 세계 최대의 모터사이클 메이커가 됐습니다. 1911년 맨섬 TT 1-2-3 일소, 1차 세계대전 군용 납품 최상위, 1920년대 50% 수출, 그리고 스카웃·치프·인디언 4라는 세 개의 전설적 라인업. 1930년대 초까지 인디언은 단순한 회사가 아니라 미국 모터사이클 그 자체였어요.
그런데 이 영광은 곧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대공황의 그림자, 라이벌 할리데이비슨의 추격, 그리고 잘못된 경영 판단들. 한때 시장 1위였던 회사가 어떻게 1953년 파산까지 가게 됐는지,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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